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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서태후의 별장 이화원

like a bird 2017. 9. 3.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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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여행중 다녀온 서태후의 별장으로 유명한 이화원에 다녀왔습니다.
서태후는 청나라 황제 함풍제의 후처로 아들을 낳은덕에 후에 왕비로 책정되었다고해요.

원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집안의 몰락과 함께 궁녀가 되었고 왕의 눈에 띄기위해 함풍제의 신하를 포섭하여 그의 양녀가 되었다고해요.
그로인해 왕의 산책길을 미리 파악하고 왕이 오는 시간에 맞춰 노래를 하는 연출을 한덕에 함풍제가 첫눈에 반해 승은을 얻어 태후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함풍제가 죽고 아들 동치제가 5살의 나이로 즉위를 해야하자 수렴청정을 통해 권력의 실세가 되면서 엄청난 권력의 화신이되어 독재를 하기에 이르게됩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도 못믿고 식사때는 은수저를 사용했다고해요.
은을 사용하는 이유는 은이 독에 반응하기 때문인건 다들 아시죠.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마련해준 효심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서태후는 자기의 권력욕에 나중에 그런 아들도 죽였다고 하네요.
서태후는 권력욕이 대단했기에 죽어나간 사람만도 여럿이리고 합니다.
함풍제가 죽기전 그런 서태후의 권력욕을 알기에 견제하기위해 마련한 방책도 미리알고 손을 쓰는 비상함도 발휘했다고해요.
권력욕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중 아들도 그중에 한명이었다고 하네요.
아들의 왕의 계승응 막기위해 서서히 향락에 빠지게하고 몸을 망가뜨리게해서 죽게 만들었다고합니다.
또한 아들 동치제의 죽음후엔 조카 광서제를 황제로 올리고 수렴청정을 다시 이어갔다고 합니다.

아들의 효심이 느껴지는 이곳은 겨울에 서태후가 춥지 말라고 밑에 불을 땔 수 있게 해뒀고 비 맞지 말라고 위에 지붕을 다 들렀는데 그 그림 또한 다 다르다고 합니다.



별장을 둘러싸고 있는 인공호수는 사람이 손으로 흙을 파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시절 포크레인도 없었을테니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거에요.
이화원과 주변 호수는 그녀의 사치의 기록물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본처는 동쪽에 거처에서 지나서 동태후이며 서태후는 후처로 본명은 나나이며 서쪽에 기거하는 태후라해서 서태후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서태후는 권력욕과 함께 사치도 즐기고 한끼 식사때 128가지의 음식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눈으로 보는 용도, 냄새를 맡는 용도등 각양각색이었다고해요.





함풍제가 첫눈에 반한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이자 노래솜씨라해서 기대를했는데 음... 초상화를 보는순간 그냥 그시절의 미모의 기준은 현재와 아주아주 다른거로 해석이 되더라고요.
사진 금지라는 안내문에 사진은 못 찍었답니다.
서태후의 권력욕은 결국은 모두를 파국으로 치닫게하였으며 중국의 악녀중 한명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덕에 저절로 역사공부가 되었던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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